📑 목차
– 아이를 위한 선택 같지만, 사실은 부모를 달래는 소비
1.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요
소아과 진료실에서 부모님들을 만나면
아이의 키와 몸무게, 예방접종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장난감, 정말 도움이 될까요?”
“비싸긴 한데… 안 사주면 괜히 마음이 불안해서요.”
이 질문에는 늘 같은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
‘부모로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누가 대신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비싼 장난감을 앞에 두고
아이의 반응보다
자기 마음을 먼저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야.”
이 한 문장을 마음속에 남기고 싶어서요.
이 마음은
부모가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책임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입니다.
2. 비싼 장난감이 주는 첫 번째 위안 – “이건 검증된 선택이에요”
비싼 장난감에는
항상 많은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발달 단계별 설계, 전문가 자문, 연구 자료, 인증 마크.
이 정보들은
아이에게 직접 작용하기보다는
부모의 마음을 먼저 설득합니다.
“이 정도 가격이면 이유가 있겠지.”
“아무 장난감은 아닐 거야.”
이 생각이 드는 순간
부모의 불안은 잠시 가라앉습니다.
소아과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부모가 과소비해서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워서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아이의 발달은 눈에 보이지 않고,
결과는 한참 뒤에야 나타납니다.
그래서 부모는
지금 당장 확실한 근거를 원하게 됩니다.
비싼 장난감은
그 근거를 ‘가격’이라는 형태로
가장 빠르게 제시해 줍니다.



3. 두 번째 위안 – “나는 부족하지 않은 부모예요”
많은 부모가
겉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같은 질문을 반복합니다.
“나, 잘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아이에게 물을 수도,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소비를 통해 스스로에게 답을 얻으려 합니다.
비싼 장난감을 사는 순간
부모의 마음속에는
작은 안도의 감정이 생깁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아이를 위해 아끼지 않았어.”
이 위안은
아이의 반응과 무관하게
즉각적으로 찾아옵니다.
아이가 금방 흥미를 잃어도,
놀이가 오래 이어지지 않아도
부모는 이미 한 번
‘괜찮은 부모’라는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이 심리는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지친 부모가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한
아주 인간적인 방식입니다.
4. 그런데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아이를 오래 진료해 온 입장에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아이의 발달은
장난감의 가격표와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비싼 장난감인가보다
얼마나 반복해서
자기 방식으로 놀 수 있었는지입니다.
값비싼 교구보다 단순한 블록 하나로
몇 달 동안 놀이를 확장하는 아이도 많고,
부모가 옆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얻는 아이도 많습니다.
장난감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성장을 대신해 주지는 않습니다.
아이의 성장은
놀이의 ‘도구’가 아니라
놀이의 ‘경험’에서 만들어집니다.
5. 부모의 위안을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기서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위안을 얻기 위해
비싼 장난감을 선택하는 마음을
억지로 부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모도 지치고,
부모도 불안하고,
부모도 누군가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존재입니다.
다만, 이 질문을 한 번만
조용히 덧붙여 보셨으면 합니다.
“이 장난감이 아이에게 꼭 필요한 걸까,
아니면 지금
내가 위로받고 싶은 걸까.”
이 질문은 부모를 흔들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부모를 조금 가볍게 해주는 질문입니다.
위안을 장난감 하나에만 맡기지 않아도
부모의 마음은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6. 아주 현실적인 소아과 의사의 정리
비싼 장난감이
항상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분명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난감이
부모의 불안을 완전히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부모가 조금 덜 불안한 상태입니다.
부모가 편안해야
아이도 편안해집니다.
이건 장난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분위기의 문제입니다.
비싼 장난감이
부모에게 위안을 준다면
그 자체로 의미는 있습니다.
다만 그 위안을
아이의 성장과 동일시하지 않아도
부모는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마무리하며
부모는 늘 “더 해줘야 하나”와
“이 정도면 괜찮은가” 사이에서 조용히 흔들립니다.
비싼 장난감은
그 흔들림을 잠시 멈추게 해주는
의자 같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성장은
그 의자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의 성장은 부모가 내려와서
아이를 바라볼 때 시작됩니다.
그 시선 하나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이미 충분한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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